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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창 회장과 김유신 대표 "아들의 신념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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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정한시선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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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최초 부자(父子) 아너 회원

김용창 회장과 김유신 대표.
아버지와 아들은 이제 기업의 성장을 넘어,
나눔이라는 가치로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가 됐다.

오랜 세월 고향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기업이 성장한 만큼 지역사회에 다시 돌려주는 삶을 실천해 온 아버지.

그리고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자란 아들이
이제 아버지와 나란히 나눔의 길에 들어섰다.

아버지가 먼저 걸어온 길은
어느새 아들의 삶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경북 최초로 부자가 나란히 아너 회원이 된
김용창 회장과 김유신 대표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선행을 넘어
한 세대의 가치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나눔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 경북 최초, 부자가 나란히 아너 회원이 되다

김용창 회장은 경북 아너 소사이어티 200호,
구미 16호 회원이 됐다.

아들 김유신 대표 역시 경북 201호,
구미 17호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경북에서 부자가 나란히 아너 회원이 된 것은
첫 사례다.

오랫동안 남몰래 나눔을 이어온 김용창 회장은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는 일에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내의 한마디였다.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 왜 당신 이름은 없느냐.”

아내의 권유로 아너 가입을 결심한 김 회장은
아들에게도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김유신 대표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같이 하자고 하셨을 때
1초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좋은 취지의 일이니 당연히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아
이번 일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나눔도 적지 않았지만,
김유신 대표에게 아버지의 삶은 이미 오랫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고 배운 교육이었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학생들의 배움을 지원하며,
기업이 얻은 것을 사회에 돌려주는 모습.

아버지에게는 평범한 삶의 방식이었지만
그 모습은 아들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나란히 서게 됐다.


■ 기업의 나눔도 이어졌다

두 사람이 아너 회원이 된 같은 날,
㈜신창메디칼도 이웃돕기 성금 5천만 원을 전달했다.

2022년부터 2026년까지
총 1억6천만 원을 기탁하며
나눔명문기업 그린회원,
구미 2호에 이름을 올렸다.

오랫동안 드러내지 않고 이어온 나눔이
이제는 기업과 가족이 함께 실천하는
공개된 약속으로 이어진 뜻깊은 순간이었다.


■ 선친의 가르침, 그리고 33년의 장학사업

김용창 회장의 나눔을 이야기할 때
또 한 사람의 아버지를 빼놓을 수 없다.

김 회장의 선친은 평소

“여유가 생기면 고향 교육에 관심을 가져라.”

고 당부했다.

지역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왔고,
세상을 떠날 때에도 재산 일부를 고향에 내놓았다.

그 모습은 김용창 회장에게
자연스럽게 삶의 기준이 됐다.

1994년,
사업 규모가 아직 크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아들의 모교 교장으로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운 두 학생을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학비를 내지 못해 자퇴 위기에 놓인 학생들이었다.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였던 김 회장의 마음은 움직였다.

“학비를 내지 못해 자퇴 처리를 해야 하는
두 학생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자식의 친구들이 그렇게 어렵다고 하니
마음이 울컥하더군요.”

김 회장은 흔쾌히 도움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날,
생전의 선친을 찾아뵙고 이 사실을 알렸다.

그 작은 시작은 이후
33년에 걸친 장학사업으로 이어졌다.


■ 모교와 지역을 지키기 위한 노력

김용창 회장이 조심스럽게 꺼낸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1998년부터 동창회장을 맡으며
모교와 지역의 교육을 지키기 위해
애써온 시간이다.

당시 해평종합고등학교는
폐교 결정이 내려지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경주에 새로운 학교가 신설될 예정이라는 정보를 접한
김 회장은 모교 동창생 선후배들과 함께
그 학교를 구미 해평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경북생활과학고등학교를
해평 지역에 유치하는 데 힘을 보탰다.

김 회장은 지금까지 드러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최근 하나둘 알려지면서
오히려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누구보다 깊은
고향 사랑과 모교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 1994년부터 이어진 장학금

김 회장은 1994년부터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학생
각각 6명씩, 매년 18명에게
29년 동안 장학금을 전달했다.

그러던 중 4년 전,
고향 해평의 학생 수가 크게 줄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구보다 애향심이 깊었던 김 회장은
혹시 학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다.

그리고 새로운 결심을 했다.

일부 학생이 아니라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전교생 모두에게
장학금을 전달하자는 것이었다.

2026년 올해에도 장학금은 이어졌다.

해평 지역 초등학교 전교생 34명에게
1인당 50만 원,

중학교 전교생 23명에게
1인당 70만 원,

고등학교 학생 10명에게
1인당 10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김 회장은 학생들이
보다 큰 꿈을 꾸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작은 힘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장학사업은
올해로 33년째를 맞았다.

하지만 김 회장은
직접 수여식에 나서는 일은 많지 않았다.

누가 주었는지를 알리는 것보다
필요한 곳에 마음이 닿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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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의 교육을 위해 먼저 1억 원을 내놓다

김용창 회장은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으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교육과 장학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구미시 장학회를 설립하고
시민과 기업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시작했지만,
초기에는 참여가 기대만큼 활발하지 않았다.

모금이 주춤하자
김 회장은 먼저 1억 원을 내놓았다.

그리고 금융권과 회원사들의 참여를 이끌며
장학사업의 기반을 넓혀갔다.

김 회장은 교육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배움에 있어서는 평등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환경 때문에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다른 것은 아껴도
아이들의 배움에 들어가는 돈은
아껴서는 안 됩니다.

교육이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 함께 키운 기업, 함께 나누는 결실

김용창 회장은 1988년 유신산업을 설립하며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사업 철학은 단순하고 분명했다.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1998년에는 신창메디칼을 설립해
일회용 주사기 등 의료기기 생산에 나섰다.

사업의 길이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감한 투자와 도전,
그리고 품질에 대한 원칙을 바탕으로
국내외에 생산 기반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의료기기는
단 하나의 결함도 환자의 안전과 연결될 수 있다.

그래서 신창메디칼은
설계부터 금형, 자동화, 포장까지
자체 생산체계를 갖추며 품질 경쟁력을 키워왔다.

김 회장은 말한다.

“우리 국민의 건강과 의료비 부담을 덜어드리는 데
아주 작은 몫이지만,
신창메디칼이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큼
김 회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기업이 성장하며 얻은 것을
사회와 함께 나누는 일이다.

기업은 혼자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지역사회가 함께 키운다는 생각.

그래서 기업이 성장할수록
사회에 돌려주는 몫도 커져야 한다는 것이
김 회장의 경영 철학이다.

“세상에 혼자 이룰 수 있는 일이란 없습니다.

혼자 살 수 없듯
혼자 기업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모두 함께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 아버지가 보여준 나눔, 아들의 신념이 되다

아버지와 아들은 닮은 듯 다르다.

판단이 서면 곧바로 밀고 나가는 아버지와 달리
김유신 대표는 보다 차분하고 신중한 편이다.

성격과 방식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나눔을 바라보는 방향은 같다.

아버지가 사회와 이웃을 생각하며
오랫동안 실천해 온 모습을 보면서
아들의 생각도 자연스럽게 사회를 향하게 됐다.

김유신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어려운 사람이 잘 살아야
사회 전체가 건강해집니다.

결국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나라의 환경을
더 좋게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가진 사람이 더 많이 나누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우리 사회에 더 많이 자리 잡는다면
사회도 조금씩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오랫동안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용창 회장도 이제는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고 있다.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또 하나의 나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그의 곁에는 아들이 있다.

아버지가 먼저 걸으며 보여준 길을
아들이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받은 것을 다시 세상에 돌려주는 삶.

그 삶의 방식은
한 사람의 선행에서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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